일년에 한 번쯤,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영화’ 자체가 주는 감동이 쉽사리 마음을 움직여서, “그냥 보시라”고 추천하고픈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고, 그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복귀작 <소원>이었다. ‘변화구’가 넘쳐나는 시대에, 맨 살과 맨 몸으로 관객을 향해 달려드는 정직한 ‘직구’의 영화였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랑’과 같은 어떤 종류의 단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한데, 자꾸 수식어와 형용사를 붙이려 하다보니, 오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좀 더 비싼 옷을 입고, 트랜디한 액세서리를 달고, 더 화려한 화장을 한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듯, ‘영화’도 (관객을 현혹시키는 수많은 매커니즘이 개발되었지만) 그것 자체의 온도와 깊이가 뜨거워야, 보는 이에게 뜨겁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뜨거움은 ‘정직한 태도’에 근거하는 것 같다.
단 한 장면도 ‘이 정도면 관객들이 충분히 좋아해줄거야!’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허투루 찍지 않고, 필요 이상의 기교를 사용하지 않은 채, ‘한 컷, 한 컷’ 소중한 마음으로 찍어내었을 현장의 온도가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내 심장으로 전달되어 왔다.
영화는 ‘법’이라는 울타리를 가운데 두고, 가해자/피해자로 갈라지게 되는 ‘대한민국 사법구조’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이 상처를 극복하는 법]과 더불어, [가해자가 법의 맹점을 이용하는 법]까지 넓은 시야로 파고 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함도 아니고, 그저 소박하게 남들처럼만 살고 싶었을 뿐인데, 한 가족에게 어떤 ‘폭력’이 찾아 온다. 그저 ‘피해’를 입었을 뿐인데, 세상은 본인들이 당하지 않은 끔찍한 ‘사건’을 당한 어린 영혼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 본다. ‘보도’에만 혈안이 된, 언론은 피해자의 상처를 배려하지 않고, 경찰의 구속 시스템도 모순 투성이다. ‘대한민국’에서 피해를 당한다는 것의 공포,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할 수도 있는 그것의 ‘차별과 폭력성’을 <소원>은 진실되게 바라보며, (너무 아프지만) 끝까지 정직하게 그려낸다.
유년기의 상처를 딛고, 마음 속에서 ‘좋은 것’들을 잘 숙성시킨 ‘소재원’ 작가의 ‘텍스트’ 원안을, ‘상업성의 폭력’에서 고군분투하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충무로로 귀환한 ‘이준익’ 감독이 사려 깊게 ‘영상’화 시켜냈다. <소원>은 배창호 감독의 걸작 <정> 이후로, ‘맥’이 끊겨버린 ‘어떤 유형’의 한국영화 문법을 부활시킨듯 한 느낌마저 들었다.
모두가 한국인의 정서를 [한]이라는 단어로 축약해서 표현했을 때, 배창호 감독님은 영화를 통해, 한국인의 본질이 실은 ‘한’이 아니라, [정]이라고 말했다. ‘한’조차, 너무 ‘정’을 주었기에, 상처가 되어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정’의 본질은 ‘나보다 남을 더 위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추격자>의 흥행 이후로, 바야흐로 극장가가 자극의 춘추전국시대로 접어 들었다.
영화 생산자들은 저마다 우리가 더 ‘자극적이다’라고 선포하였고,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자극’에 점점 무더져 갔다. 상황이 그리 되면서, ‘배우’들의 진실된 연기를 통해서 정서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해줄 수 있는 ‘영화’라는 콘텐츠에서, ‘나보다 남을 더 위하는 마음’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려내는 작품이 점점 사라져 갔다.
<소원>은 충무로에서 시나브로 증발해버린, 그 마음을 다시금 ‘스크린’에 재현하는데 성공한다. 나쁜 마음을 먹은 가해자가 쉽사리 빠져나갈 수 있는 법의 맹점을 통해, ‘대한민국 사법 구조의 모순’과 ‘피해자의 상처’를 깊이 있게 파헤치지만, 거기에만 에너지를 집중하지 않고, ‘나보다 남을 더 위하는 마음’을 가진 이웃들을 통해, 또한 어른의 잣대가 아닌, 상처입은 딸과 눈높이를 기꺼이 맞춘 ‘부모의 마음’을 통해, 관객의 심장을 서서히 파고 들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이내 적셔 버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자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볼을 타고 흘러 내리는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살면서, ‘남을 귀히 여기는 사람’을 더 자주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정말 귀하기에, 일년에 몇번씩 밖에 볼 수 없기에, ‘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의 가치’를 ‘영화’를 통해서라도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교와 형식미를 강조한 ‘영화’에 빠져 들어, 자칫 놓칠 수 있었던 어떤 ‘소중함’을 발견하게 해 준, <소원>이라는 작품에 감사한다.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스텝들과 연기자,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진실된 태도’로 좋은 결과물을 완성해 낸 ‘이준익’ 감독님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무엇보다도, <소원>은 간만에 극장에 모시고 간 어머니가 충분히 웃으시고 우셨던 영화다. ‘영화’의 미덕은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0월의 어느날,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 또 그 현실을 극복하게 해주는 ‘이웃들의 귀한 마음’을 일깨워 준, 마음에 깊이 박힌 <소원>이라는 작품을 만난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