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며,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쉬운게 아니겠구나 싶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내가 그 입장이 되어야지만,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속에서는 (과거 병원에서 아들이 뒤바뀐 설정상) 두 명의 아버지를 필연적으로 등장시키는데, 처음에는 그들의 ‘경제력’이 보였다. 최소한의 장면에 많은 함의를 담아야하는 영화 매체의 특성상, ‘렉서스’와 ‘다마스’, ‘DSLR’과 ‘똑딱이’로 상징되는 ‘중산층’ 아버지와 ‘서민’ 아버지로 그들이 보였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일터’가 장면에서 배제되고, ‘가족’ 에피소드에 집중되자, “어떤 아버지가 더 좋은가?”에 대해 흔들림을 경험했다. 처음에 느꼈던 경제적인 인상은 어느덧 사라지고, ‘아들에게 시간을 거의 내주지 못하는 냉정한 아버지’와 ‘아들과 잘 놀아주는 유머러스한 아버지’로 그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다.
중산층 아버지 ‘료타’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는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부모 세대에게 받은 아픔과 갈등)에 최소한의 장면을 할당하여 입체감있게 그려내기는 한다. 그러나 영화를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그 장면 만으로는 그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었던 근원적인 설명이 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끊임없이 진행되어, 료타는 아들이 뒤바뀌었던 상대측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고, 직장에서 연구소로 발령받아 상대적으로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서, 점차 좋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그리고 그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었던 근원적인 이유가 클라이막스를 통해 비로소 묘사된다.
이유는 무척 간단한 장면을 통해 묘사되는 데도,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력이 너무나 섬세하여, 이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몰랐던거다.
소통하지 않았기에, 소통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혹은, 너무 바빠서 소통할 시간이 없었기에,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던거다.
혹은, 너무 바빠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거다.
‘상사’의 눈치를 잘 살피고, ‘처세’에 능하고, 경쟁에서 ‘승리’하여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정작 아들과는 ‘소통’하지 않았기에, 그래서 아들을 몰랐기에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었던 료타!
그는 경험하기 힘든 황당한(6년 전, 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뀐) 일을 통해, 또 그로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해, 살아가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성찰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사회적 성공에 방해가 되었기에 냉정하게 살아왔던 한 남자가, 비로소 가족 앞에서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전보다 더 웃게 되고,
아들 앞에서 눈물까지 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료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
성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 표현’을 냉정히 배제한 채 ‘자기 계발’에만 충실했던 한 남자가, 황당한 [친자 교환] 사건을 겪으며 가족에게 만큼은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아버지로 성장하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