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막골에서 10년을 보내는 동안, 어느덧 [간디]가 되어버린 유인원들의 리더 ‘시저’가, 인간과의 공존과 이상을 실현하고자 발버둥 치다, 결코 세상이 나이브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정도전]으로 각성하게 되는 영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1895년, 뤼미에르 브라더스의 <열차의 도착>으로 ‘영화’라는 콘텐츠가 시작된 이후, 연출/촬영/미술/편집/CG/특촬 등 콘텐츠 내부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류가 구축하고 발전시켜 놓은 거의 모든 테크닉이 완벽하고 압도적으로 집약된 작품이다. 기술적으로 만 뛰어난 게 아니라, 문명으로 먹고살던 인류가 그것으로부터 배신당한 후, 생사를 고민하는 ‘인간’들 각자의 사정과, 그 문명의 피해로 진화한 ‘침팬지’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스토리텔링을 풀어나가는 전략에 있어서도 최고 수준의 솜씨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거대 예산이 투입된 콘텐츠가 범하기 쉬운 ‘인간 VS 유인원’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대결 구도가 아니라, 각 그룹이 속한 구성원 내부/외부 갈등을 촘촘하게 엮어내면서 긴장과 몰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그로 인해 특수촬영과 센서 연기로 분한 유인원들도 살아있는 존재로서,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블록버스터로 철학 하기’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앞선 <매트릭스>,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구축해 놓은 영역을 <혹성탈출>도 2편을 끝내주게 만들어내면서 ‘충분히 가능하다’라는 것을 또 한 번 증명해낸 것 같다.
유인원과 인간,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종족이 본질적으로 ‘무리’지어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것을 보여주며, 진화한 유인원 사회의 섬세한 관찰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어떤 지도자여야 하는가?”, “윤리적인 선택은 어떤 것인가?”까지 문명화 된 도시인들이 ‘먹고사는 문제’로 늘 망각하며 지내는 귀한 사유의 질문을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끌어낸다.
‘존재하는 것들’을 너무 나이브하게 믿어버린, 유인원 ‘시저’와 인간 ‘말콤’은 우리가 함께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다는 ‘판타지’를 벗어나, 어느덧 ‘현실’을 냉정하게 각성한다. 아쉽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욕망을 다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며, 문명 진화를 통해 각각의 존재가 겉으로는 세련되게 보이지만 실은 그 내부에 감춰진 야만성은 여전히 지독하며, 그것을 모두 억누르고 살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인정하며 이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1989년의 [우정]은 <첩혈쌍웅>의 킬러 ‘주윤발’과 경찰 ‘이수현’의 것이었다면, 2014년은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지혜로운 유인원 리더 ‘시저’와 이상주의적 인간 ‘말콤’의 것이라고 믿게 됐다. 전 세계 72억의 인구 중, 15000명이 참여해 황홀한 시청각적 재미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해 준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진심으로 제작진 한 분, 한 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영화가 상영하는 동안 단 1컷, 1프레임도 끝내주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