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의 신작 <블루 재스민>을 보며, 근래에 접한 어떤 ‘호러 영화’보다 더한 ‘공포감’을 느꼈다. 축약해서 20자평을 굳이 하자면, [남편의 카드를 잃게 된, (강남)상류층 아줌마의 몰락]을 담고 있는 영화였는데… ‘허영심’ 많은 여성을 향한 ‘우디 앨런’ 할아버지의 냉소가 너무나 지독하고 처절해서, “아니, 꼭 이렇게까지 밀어붙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긴, 이 정도로 지독하게 밀어붙였기에, ‘좋은 작품’이 된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팩트’라고 생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케이트 블란쳇’의 놀라운 연기가 영화의 퀄리티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과거, ‘우디 앨런’ 할아버지가 ‘돈만 밝히는 꽃뱀’에게 데인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스스로 노력하지도, 노동하지도 않고, 남편의 경제력을 통해 상류층 문화를 누리는 여성’에 대해 냉소하며, 그녀들에게 강력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이봐요, 아줌마, 당신이 지금 상류층 문화를 즐기는 것이,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당신 남편의 카드를 몰수해 버린다면, 당신의 능력만으로 그 정도의 소비를 할 수 있겠어요?” 라고 대놓고 돌직구를 날린다.
이런 질문을 마음 속으로 해 본 ‘남성’들은 종종 있었지만,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 고약한 뉴욕 수다왕 ‘할아버지’는 최근 몇년간 끝내주는 유럽 관광영화(?)를 몇편 만들더니, 미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장면으로 시작하는 <블루 재스민>을 통해, ‘남편의 경제력 외에는 믿을 구석 없는 여성의 허영심을 향한 독설’을 강력하게 날린다.
그 ‘독설 어퍼컷’이 너무나 강렬해, ‘재스민’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을만큼 지독하고, 처절하게 느껴졌다. 후반부에는 ‘공포’스럽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자본’의 힘을 믿고, 그것이 주는 ‘소비의 기쁨’을 추구하는데, 스스로가 자신의 ‘소비 수준’만큼 그 ‘자본’을 벌 능력이 없을때, 그 자본을 책임져주는 ‘남편’이란 존재가 사라졌을때 발생할 수 있는 공포! …그것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영화가 <블루 재스민>이다. ‘재스민’의 몰락과 그 이후의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속 계급 구조와 소비의 허상’을 통찰해낸다. 이복동생과의 대비로 ‘재스민’의 애처로움이 더욱 극대화되지만, 한편으로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영화가 구성되어 있다.
사려깊은 ‘수다쟁이’ 할배가, 왠일인지 고약한 마음으로 작정하고 극단까지 밀어붙여 만든 (누군가에겐 끔찍한) 공포 영화 <블루 재스민>을 추천한다.